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1908~1945)
1912년 마포 공덕동에 대규모 감옥이 신축된 후 경성감옥 이름이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축된 공덕동의 감옥이름은 '경성감옥'이 되었다.
서대문감옥은 1923년 5월 5일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8월, 짧은 방학을 보내는 아이들과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왔다.
정말 한번은 가서 눈으로 보고 싶었던 곳.
입장하기 전 서대문형무소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며 관람중에 지킬 예의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5학년인 큰아이는 역사에 대한 엄청난 관심으로 표정부터 이미 비장했다.
붉은 벽돌 건물과 초록의 잔디가 이렇게 스산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관람은 벽에 표시된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된다.
먼저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2학년인 둘째아이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으로 분노한다.
오늘만큼 선과 악의 대비가 분명할까.
기유각서(1907. 7. 13)
기유각서(1907. 7. 13) 일제가 대한제국의 사법 및 감옥사무를 장악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하였던 문서이다.
1909년 당시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 2대통감 소네 사이에 체결된 것으로 모두 5개 조항으로 되어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실권이 박탈되는 일이 일어난다.
기유각서는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제로 빼앗는 전초작업이었다.
한자로 써내려간 이 문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았을까.
기록으로 보는 옥중생활.
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쇠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 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고 남산밑에서 무악재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세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형무소 내부
감옥 내부는 더욱 스산했다.
1층은 개방되어 각각 둘러볼 수가 있고 몇몇 호실에 옥중생활에 대한 내용을 전시해 놓은 곳도 있다.
영화에서 묘사한 형무소 그대로였다.
가족 모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작은 구멍, 녹슬어 녹색으로 페인트칠된 쇠창살에서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2층은 국가사적 제 324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출입금지가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위로 올라가면 우리가 관람하고 있는 1층보다 더 사실적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을 당했던 장소는... 차마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광복 이후 풀려났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영상을 보고 발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나라가 없다는 것,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 의미가 무엇이길래 고통도 목숨도 두렵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와 위쪽을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있다.
올해 3월에 개관했고 입장료는 무료이다.
임시정부기념관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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